한국발도르프학교연합

발도르프학교를 만드는 사람들|고숙영 선생님 인터뷰와 부산발도르프학교 설립 이야기

인터뷰 | 부산발도르프학교 초창기 창립 멤버 고(故) 고숙영 선생님

고숙영 선생님은 부산발도르프학교를 세운 초기 멤버 중 한 분이었습니다. 공동육아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던 시절 발도르프 교육을 처음 만났고, 전은진 선생님을 비롯한 초기 멤버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공부모임을 이어가다 “우리 학교 하나 만들자”는 의지로 학교 설립을 결심했습니다. 1천만 원의 기부금으로 13평짜리 아파트를 얻어 학생 5명, 교사 3명(담임 김병직, 영어 이은화, 수공예 고숙영)으로 첫 학년이 시작되었고, 실패했을 때 사회에 끼칠 영향이 크다는 무게감 속에 교사를 구하는 일조차 조용히 진행되었습니다.

학교는 해마다 이사를 다녔습니다. 원문동 13평 아파트에서 부림동의 방 3개짜리 2층 집으로, 다시 4학년이 생긴 해에는 성령교회 공간으로 옮겼습니다. 운영의 중심 원칙은 분명했습니다. 교사가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부모가 전폭적으로 지원하고, 교사는 생활급여를 받으며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. 교사·학부모가 매주 금요일 함께 회의를 열던 시스템은 1년 뒤 분리되었고, 2년째부터 이사회가 구성되어 운영과 교육이 나뉘기 시작했습니다. 학교의 중심에는 언제나 “개인의 사정보다 아이와 학교가 흔들리지 않는 결정”이 있었습니다.

가장 큰 위기는 한 교사가 사표를 내던 시기였습니다. 교사와 부모의 입장이 달라 조율이 쉽지 않았지만, 학교는 수없이 많은 회의와 끊임없는 대화로 서로가 납득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냈습니다. “각자의 생각을 내려놓고 그때 당시 최선이라 생각한 것을 선택했던” 이 경험이 이후 학교 운영의 기반이 되었고, 방과후 학교 운영, 화요·수요 공부모임, 캐나다 수공예 교사 초청 자체 연수 같은 활동이 꾸준히 이어지며 학교는 8년 만에 180여 명 규모로 성장했습니다.

인터뷰 말미에 고숙영 선생님은 새로 학교를 시작할 부모들에게 “교육과 교사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, 그리고 교사가 생활할 수 있는 급여”를 당부했고, 교사들에게는 “끊임없이 배우기 — 동료와 아이와 부모가 가장 큰 스승”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. 그가 이 일에 마음을 깊이 둔 이유도 분명했습니다. “발도르프 교육은 인간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는 주지 않는다. 그렇게 자란 사람의 행복의 빛이 사회로 전해져, 결국 좋은 사회를 이룰 것이다.” 이 한 문장이 학교의 시작부터 오늘까지를 지탱해 온 믿음이었습니다.


본 글은 2021년도 한국발도르프학교연합 기관지에 수록된 글입니다.
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

👉 2021년도 기관지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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